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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배세화 그의 진중한 시선 본문
몇 년 전 한 디자인 전시에서 배세화의 초기작을 봤던 기억이 있다. 조형적인 나무 가구의 거대한 스케일에 감탄하며 지나쳤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그는 지금 코리안 라이징 스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생각이 많고 조심스러운 그는 분명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말을 꺼내겠지만 나무를 향한 그의 뜨거운 열정과 진중한 시선만큼은 오랫동안 나무를 만져온 장인과 많이 닮아 있었다.
에디터 정수윤|포토그래퍼 이종근
이른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작업에 전념하는 일산 작업실에서의 배세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진중한 성격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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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딩한 월넛 각재로 만든 나무 가구 작품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작가 배세화앙상한 가로수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서는 코끝이 알싸한 겨울 냄새가 났다. 매서운 겨울이 완연히 절정에 달한 어느 아침, 일산으로 이사한 배세화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들이 줄지어 놓인 후미진 골목,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열자 바짝 마른 장작이 타닥타닥 타는 따듯한 겨울 소리가 촬영팀을 맞이했다. 배세화의 창작 공간은 생각보다 더 소박했다. 인천 목재창고에서 공수한 원목과 재단과 샌딩을 위한 목공 기계들, 각재 벤딩을 위한 스티머, 그가 학생 시절부터 모아온 공구들이 가지런히 정렬된 수납 선반과 작업 테이블 위에는 톱밥이 뽀얗게 내려앉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풍부한 음영을 더하고 있었다.
올해 서른둘, 국제 가구 페어에 참가한 경험은 밀라노 가구 박람회>와 지난해 아트 바젤 페어> 디자인 마이애미> 세 번이 전부다. 그런 그가 전 세계 디자인 갤러리와 컬렉터들의 관심을 받는 일약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것은 나무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의 디자인 덕분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면에서 선으로 흐르는 형태인데다 곡선과 양감의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스케일이 큰 조형물이자 완만한 곡선이 우아하고 섬세한 가구라는 찬사를 받는 것. 그의 가구는 얇게 켠 각재를 스티머 안에 넣고 3시간 동안 찐 뒤 미리 제작한 틀에 맞게 각도를 조절하며 구부려 하나씩 고정하는 스팀 벤딩 기법으로 제작된다. 오전 9시부터 꼬박 13~14시간 작업해도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 1달 반에서 2달 정도가 소요된다고. 최근 갤러리 서미와 전속 계약을 맺고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이 젊은 작가는 유일한 취미가 나무 만지는 것이고, 나무 만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가 조심스럽게 꺼낸, 그의 진중한 속마음.
3D로 작업한 틀의 각도를 세밀하게 다듬어 나가는 과정. 스팀 시리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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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세화의 스팀 시리즈 가구가 완성되는 컨테이너 창작 공간3뽀얗게 내려앉은 톱밥들 사이로 빛이 풍부한 음영을 더해주고 있는 배세화의 작업실
4면에서 선으로 갈라지는 아트 퍼니처
5리드미컬한 곡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배세화의 스팀 시리즈 가구
나무는 친숙한 소재지만 다루기 힘든 소재이기도 하다. 나무를 작업 재료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무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무는 솔직하고 한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이 만든 살아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가끔 곤욕스럽고, 하자가 생기기도 하지만 손이 가는 만큼 보답하므로 다른 소재보다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이 크다. 가구를 만들 때 하자를 최소화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고, 그 뒤는 나무에게 맡겨서 나무가 할 일이다.
선호하는 수종이 따로 있는가?
오크와 월넛. 지금은 월넛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면에서 갈라지는 선을 표현하고 싶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고민했던 것인데 내 작업에서 변하지 않을 주제라고 해야 할까. 직선과 곡선의 만남, 길이와 단면의 변화, 각도의 차이에 의해 디자인이 많이 달라진다. 볼수록 질리지 않고 명상을 하게 만드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마치 목공소를 연상시키는 소박한 배세화의 작업실
2자신만 알아볼 수 있게 간략히 그린 디자인 스케치
3대학 시절부터 모아온 수공구들
4원통형 스티머에서 각재를 꺼내 벤딩 상태를 확인하는 배세화. 상온에서 10~15초가 지나면 금세 딱딱해지므로 순발력이 필요하다
5작업실 한켠에 쌓여있는 오크와 월넛
디자인 작업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그때만큼은 작업실을 벗어난다. 주로 조용한 동네를 찾아 다니는데 헤이리 근처 커피숍에 가기도 하고, 춘천에 갈 때도 있다.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면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간략한 스케치 정도만 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가장 편안할 때다.
사실 배세화의 나무 가구는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들이는 공도 그렇고 가격도 일반 사람이 사기에는 많이 비싸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더 많은 사람에게 합리적인 가격대의 가구를 소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언젠가 생활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갤러리에 소속된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졌다. 가끔 인터넷으로 찾아보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동경의 대상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것 같다. 나를 작가로 부르든 디자이너로 부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런 타이틀로 나를 제한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단지 지금 내가 매료되어 있는 작업에 열중하고 싶고 당분간 그럴 계획이다. 내 가구가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가격대라는 점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관심 있는 차를 돈을 모아 사듯, 내 가구를 그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으면 한다. 컬렉터가 아니라도 그런 사람이라면 내 가구를 사지 않을까….
하루 14시간 이상을 작업실에서 보낸다고 들었다. 작업할 때 당신의 친구는 누구인가?
지난주부터 대학교 동기와 작업실을 함께 쓰고 있다. 사실 나는 작업할 때는 음악도 듣지 않고, 머리맡에 책을 놓고 읽을 짬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건조하고 재미없다고 하지만 작업실과 집만 오가며 작업에 전념해도 전시 일정을 맞추기가 빠듯해 얼마 전에는 홍대 앞에서 파주로 이사했다.
여름에 런던에서 글로벌한 해외 전시를 앞두고 있다. 당신의 가구에 담긴 한국적인 디자인 DNA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 역시 무척 까다롭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의 연속이다. 누구나 디자이너라면 한국성에 대해 많이 고민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홍대 앞에서 작업할 때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과 항상 나눴던 대화의 이슈는 바로 한국적인 아이덴티티에 관한 것이었다. 디자인 강국들은 그들만의 성격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성을 우리가 정의 내려야 할지, 우리를 보는 해외의 눈들이 판단해야 할지 그것도 혼란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디자이너와 작가의 순수한 탐구가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순간 한국적인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규정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분명 내 작업에도 한국적인 디자인 DNA가 있겠지만 어떤 요소로 한정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갤러리 서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다. 지난해 디자인 마이애미>에 출품한 작품도 모두 팔렸다고 하던데, 갤러리 전속 작가가 된 소감이 어떤가?
갤러리 전속 작가가 되면서 작품 판매에 대한 부담이 적어져 작업에만 전념하게 됐다.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배세화 당신이 어떤 작가인지 소개해달라.
요란할 정도로 복잡하고 신선한 디자인을 즐기던 나지만 지금은 모든 요소를 다 버린 디자인을 하고 있다. 단발적인 메시지보다는 비움과 채움을 떠올리며 정제된 메시지를 가구에 담는다. 나의 유일한 취미는 나무 만지는 것이고, 나무 만지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취미가 일이 되고 삶이 되는 지금이 즐거운 사람, 바로 나 배세화다.
알싸한 겨울 냄새를 맡으며 배세화를 만나러 간 길은 마치 비가 내린 숲에서 나는 나무향처럼 향긋했다.
1벤딩한 각재로 만든 조명은 화려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2직선과 곡선의 만남, 길이와 단면의 변화, 각도의 차이에 의해 디자인이 달라지는 배세화의 스팀 시리즈
정수윤
[OGTITLE]작가 배세화 그의 진중한 시선[/O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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