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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이너 권재민의 새로운 화법 본문

인테리어 소품

가구 디자이너 권재민의 새로운 화법

엔터PR 2024-05-01




‘기억 흔적(Memory Trace)’이란 작업을 통해 나무의 상징성과 감성적 기능성에 대해 고민했던 디자이너 권재민. 그의 가구 앞에서 굳이 작가와 디자이너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구인 동시에 작품이다. 가구 디자이너 권재민은 현재 ‘나무’를 주재료 삼아 가구를 만들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꽤 한동안 그의 작업에 동행할 주제인 ‘나무’. 그는 대학에서 목조형가구를 전공했다. 학부와 대학원을 거치면서, 꾸준히 나무와 씨름했다. 졸업 후 얼마간 금속을 향한 외도(?)의 길도 걸었다. 물론 다양한 재료에 대한 그의 탐구심은 여전하고 꾸준하다. 하지만 그의 최근작 ‘크랙 볼(Crack Ball)’에서 나무를 해석하는 그의 시선이 또 한 번 달라졌다. 그가 아직까지 나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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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권재민의 첫 가구는 무엇이었나.
사실 목조형가구를 전공하기 전에 서양화를 먼저 전공했다. 회화과를 졸업할 당시 졸업 작품으로 콘크리트 의자를 만들었다. 내가 졸업할 당시 서양 미술계(오히려 학교 교육에선 대접받지 못했던 사조였다)에서 출발한 개념주의 미술이 봇물 터지듯 밀려 들어왔다. 젊은 작가들은 ‘사물에 의미 담기’라는 행위에 매료돼 있었고. 나 역시 개념 미술의 일환으로 회화 대신 콘크리트 의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작품이 내 가구의 시작이었다.

단순히 졸업 작품 하나의 영향은 아닐 듯한데, 가구를 전공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기존에 있던 사물에 의미와 개념을 담는 것도 예술의 또 다른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난 당시 미술에 비해 디자인을 하위 예술로 취급하는 수직 관계가 싫었다. 게다가 가구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익숙한 문화임에도 존재감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또 담을 수 있는 사물임에 분명했다. 그래서 가구를 선택했다.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회화를 전공한 이력이 권재민의 가구에 미치는 장점과 단점을 꼽자면.
회화는 개인 작업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졸업 이후 작가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인식이 나에게 조급함을 덜어주는 장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졸업 이후의 진로를 초조하게 생각하기보다, 내 작업에 몰두 할 수 있었다. 단점은 가구 디자인을 너무 개념적으로 접근하려다 보니 생기는 과욕이었다. 그 안에 계속 메시지를 담으려던 행위 때문에 가구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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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표현 재료로 선택한 이유는.
목조형가구학과를 통해 오랜 시간 나무를 익혔다. 처음에는 학부에서 나무를 너무 강조하는 스타일이 싫어서 졸업 후 금속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나무 가구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는 인간이 갖고 있는 생명력, 잠재된 의식 속에서 가장 인간과 가까운 재료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적 경주 원자력 발전소 근처 ‘캐나다 주재원(기술 이전자)’들을 위한 마을에 살았었다. 그때가 1980년대 초였고, 당시로선 경험하기 드문 세련된 문명의 공간이었다. 스포츠 센터며 학교, 문화 시설까지 모두 마을 안에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완벽한 공간 안에서 단 한 명의 한국 친구와만 어울렸다. 그 환경이 부담스러워 굳이 마을을 벗어나 산과 바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때 자연과 어울렸던 기억이 내 잠재 의식 속에 깊게 남아 있는 영향인지, 난 여전히 돌과 나무 같은 자연 재료들에 애착이 간다.

매끈한 월넛과 애시 소재로 완성했던 이전의 작품에 비해 ‘크랙 볼’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쓰는 나무는 결국 죽은 나무인데, 그 재료로 자연에 대한 상징과 형상을 갖게 하려는 나의 작업에서 모순을 느꼈다. 자연에 대한 상징성을 담아내기 위해 ‘나무’를 선택했는데, 재료를 다루는 방법 자체는 너무 인위적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나무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무 작업의 시작인 ‘기억 흔적’이 고민의 시작인 동시에 전환점이었다.

쪼개지고 터진 나무는 버려지게 마련이다. 난 나무 물성 그대로를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느릅나무로 만든 ‘크랙 볼’은 가공하지 않은 나무가 터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를 조명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나무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살려내고 싶었다. 또 버려진 재료를 디자인으로 살리고픈 의도였다. 원래 터진 것도 있고 작업 중에 터지기도 했다. 물론 사용상의 편의를 위해 어느 정도에서는 변형을 멈추게 하는 작업도 가미했다. 만주를 닮은 조명의 색깔은 심변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이런 나무는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터진 자리에서 새어나오는 빛마저도 디자인적 요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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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 볼’이후 준비 중인 가구가 있나.
올해는 일단 가공하지 않은 나무의 물성을 드러내는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테이블도 만들고 싶고. 무엇을 만들든 자연스러운 나무의 흔적을 유지하고 싶다.

나무 가구를 통해 권재민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작업을 시작한 이후 가졌던 고민을 돌아보면서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메시지’와 ‘향수’. 한때는 내 스스로 너무 작품에 집중해서 가구 안에 엄청난 ‘철학’과 ‘메시지’를 넣으려고 했던 적도 있다.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기능과 디자인에 앞서 ‘메시지’를 담는 데만 주력했었다. 하지만 모든 재료나 형상은 형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내 식대로 변형시키고 해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자연을 표현하려는 욕구만은 늘 한결같았다. 결국 내 작업의 근간은 자연에 대한 향수와 나만의 개념을 가구의 본질 안에 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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