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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소품

시간과 사람과 소통하는 가구 슬로우 퍼니처 서랍展

엔터PR 2024-04-26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처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가구가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일상의 추억과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나뭇결처럼 차분한 위로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동반자적인 가구. 자원을 낭비하는 소모성 상품이 아니라 목재를 골라 느긋하게 숙성시키고 깎고 다듬은 결과물로서의 가구. 더 많은 사람들과 이러한 가구를 공감하기 위해 친환경 가구 디자이너 6인이 모였다.


"서랍은 우리네 삶의 흔적이 차곡차곡 담긴 추억의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다. 우연히 서랍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네잎클로버를 보며, 언제 찍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낡은 증명사진을 보며 우리는 지난 삶을 추억한다.

굳게 잠긴 서랍을 보면 때론 누군가의 비밀이 감춰져 있는 듯하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버리지 못한 추억의 조각들이 서랍 속에서 기나긴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이제는 떠나버린 사람과의 추억이 서랍 속에서 저마다의 역사를 품은 채 굳게 잠겨 있기도 하다.

서랍은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보관된 보물 창고이다. 굳게 잠긴 서랍이 열리는 순간 나만의 소중한 비밀과 당신과의 애잔한 추억이 세상 밖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날 것이다."
- 슬로우 퍼니처 서랍전 초대글 중 -


느리지만

진중한 시선으로 원목 가구를 만드는 여섯 명의 작가가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인사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KCDF 갤러리 2층 전시장에서 선보인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슬로우 퍼니처-서랍>. 작년 <슬로우 퍼니처-사랑채>에 이은 두 번째 '느린 가구' 이야기다. 한 가구 학교에서 동문수학한 고영규, 김명호, 김선아, 박연규, 안형재, 이경원 작가는 오랜 작업 기간을 거쳐 선 하나, 결 하나에도 깊은 고민과 정성을 쏟아내는 원목 가구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에게 가구는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찍어내는 상품이 아니라 삶과 궤적을 같이하는 삶의 일부이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작품에 맞는 나무를 고르고, 다시 시간을 들여 나무를 건조시키고 결을 골라 자르고 켜고 대패질하고 다듬어서 가구를 완성한다.

가구의 모양새를 결정하는 데에도 꽤 공을 들인다. 작품에 따라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보통 가구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의 삼분의 일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지 고민하는 데 쓴다. 나무 고유의 결과 빛깔과 향기를 최대한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작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슬로우 퍼니처의 나무가 가구로 만들어진 후에도 주변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며 숨을 쉬는 건 이 때문이다. 잡목을 모아 본드로 굳히거나 합판에 무늬목을 발라 나무 시늉만 낸 가구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무 본연의 질감과 색을 살려 디자인한 가구들은 필요 이상으로 멋을 부린 선이나 자질구레한 장식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슬로우 퍼니처-서랍>의 가구들도 마찬가지. 색색의 화려함은 없지만 단정한 선만으로도 충분한 공명을 울린다. 전시의 주제인 다양한 서랍을 만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각기 공방을 운영하는 여섯 작가의 서랍에 대한 여섯 가지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억의 물건이 담긴 속 깊은 서랍, 수납이란 목적에 딱 부합하는 실용 서랍, 안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비밀 서랍, 기억을 자극하는 향수 서랍 등 디자이너 각자의 생각을 풀어낸 서랍들이 그릇장, 옷걸이, 의자, 탁자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됐다.

보통 '만지지 마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붙은 엄숙한 전시장들과 달리 <슬로우 퍼니처-서랍> 전은 작품에 자유롭게 앉아보고 만져보고 열어볼 수 있다. 작가들이 눈치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권하는 쪽이다. 가구는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보고, 다리를 붙여 앉아보고, 등을 기대봤을 때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 가치를 느낀 가구라면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처럼 긴 시간을 사용하며 가꿔 나가는 슬로우 퍼니처, 그런 가구 하나쯤 갖는 것도 꽤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김선아(가구디자인 스튜디오 다룸)

간결한 모양새에 실용적인 쓰임새의 가구를 만든다.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탓에 그가 만든 가구에는 손잡이도 없고 다리도 얇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해 생활에 꼭 필요한 가구를 만든다.


고영규(아트 & 크라프트 스튜디오 아크라프트)

작업할 때 틀(Frame)과 표면(Surface)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덩어리의 물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고, 형태적으론 단순하지만 내부적으론 수납의 효용 가치가 높은 기능적인 서랍을 선보였다.


안형재(꿈꾸는 공작소)

기성품에서 찾지 못하는 가구, 건축적인 형태의 가구가 강점. 전시에 출품한 가구는 추억 속의 장난감이 컨셉트. 피에로 상자 같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요술 상자 같은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떠올리며 작업을 했다.




고영규의 작품 Hydra

세 개의 서랍장이 한 몸을 이룬 듯한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여럿 달린 히드라 형태에서 착안해 만든 것. 서류함의 이동성을 높인 하부장은 날카로운 발톱에서 따왔다.


Chocolate Mass T set

군더더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오브제의 정체는 의자. 위쪽에 달린 서랍을 열면 다양한 크기의 소품을 칸칸이 넣을 수 있는 수납함이 나온다. 아이패드, 리모콘, 장신구 등 용도별로 물품을 정리할 수 있다.




안형재의 작품 Cube Stool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놀았던 큐브 모양의 의자를 만들었다. 물론 큐브처럼 돌릴 수도 있다. 디자인도 재치 있지만 실용성도 만점. 블록을 빼면 한약방의 약재 상자 같은 서랍장으로 변신한다.


Slinky Bench

계단에 올려놓으면 살아 있는 애벌레처럼 열심히 계단을 내려가던 스프링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고 늘릴 수도 있다. 가구를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참 예쁘다.




김선아의 작품 Drawer Bloom

만개한 꽃에서 모티브를 얻은 서랍장.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작가의 개성이 듬뿍 배어 나온다. 서랍 사이사이의 틈을 수납공간으로 활용해도 좋다. 재료는 호두나무, 단풍나무, 오동나무.


Dining Chair Blue+Red+Indigo

의자 양옆을 잡아당기면 가방이나 찻잔을 올려놓기에 좋은 받침 형태의 서랍이 나온다. 폭신하고 안락한 패브릭 의자에 앉아 편안한 카페 분위기를 느끼며 식사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호(생활예술공간 가목)

자연에 순응하는 슬로우 퍼니처에 전통 가구의 단아함이란 옷을 입히길 좋아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한지 문짝을 단 옷장을 선보였다. 김명호 작가에게 서랍의 쓰임새는 보관으로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을 담은 서랍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경원(가구디자인스튜디오 나무수레)

가구는 보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옛날에는 사용자와 집 안 분위기에 맞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 가구장이가 몇 날 며칠을 집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사용자의 성격에 맞는 가구를 만들고자 한다.


박연규(친환경가구디자인스튜디오 手)

나무와 천천히 이야기하며 느림의 미학을 담는 작업을 즐기는 슬로우 디자이너. 그래서 가구를 만들 때 일부러 속도를 내지 않는다고. 화려하지 않고 집에 들여놨을 때 중심을 잡아주는 편안한 직선 가구를 많이 만든다.




김명호의 작품 옷 정리장

티셔츠, 니트 등 걸기에 적당치 않은 옷들을 개서 보관하기에 좋은 장. 액자 속 그림이나 병풍처럼 자체만으로도 장식성이 강하다. 동그란 무늬는 한지를 입힌 것으로 서양화가인 아내와 협업한 것.




이경원의 작품 Cabinet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원목 그릇장. 앞에서 여는 수납장의 기본 구조를 바꿔 양문형 냉장고처럼 옆에서 열리는 열림 구조로 디자인했다. 문짝에도 공간을 만들어 그릇을 세워서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Mini Drawer

정리되지 않는 책상 때문에 고민이라면 여기 품위 있는 해결책이 있다. 네 개의 서랍 안에 작은 소품들을 넣어보자. 미니 서랍장은 원목 라디오처럼 깔끔한 오브제 역할을 할 것이다.




박연규의 작품 다락논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서 보았던 다락논(다랑논의 북한어)을 형상화한 거실장. 뒷면은 오크를 얇게 켜서 대바구니처럼 엮어 개방감을 주었다. 밀고 뺄 수 있는 받침대는 다탁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기획 / 조혜원 기자 ■진행 / 이은아(프리랜서)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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