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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로 간 가구들 39가구 전시회39 본문
One Collection
Easy Chair No.45
이번 대림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핀 율의 작품과 그의 포트 레이트. 세월이 흘러도 그의 디자인은 아직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라는 책을 보면 가구를 선택하는 행위는 결국 한 인간이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의 결과물임을 말하고 있다. '나는 소파를 선택하는 일에는 항상 그 사람의 품위가 배어나온다고 확신한다. 내 생각이 편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파라는 것은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소파에 앉아서 성장한 자만이 알 수 있다. (중략) 좋은 소파를 사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식견과 경험과 철학이 필요하다. 돈이 들기는 하지만 돈만 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인가 자신의 확고한 이미지가 없다면 훌륭한 소파를 손에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말처럼 평생 곁에 둘 가구를 고르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좋은 가구를 사기 위한 식견과 경험과 철학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무라카미의 말처럼 어린 시절 좋은 소파가 있는 집에서 자라지 못했다면 경험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고, 식견이나 철학은 부족하나마 가구 매장을 방문하거나 관련 도서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보다 쉬운 대안을 꼽으라면 작가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가구 전시회를 통해 좋은 가구를 많이 보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대림미술관의 권정민 큐레이터는 대한민국에서 가구 전시회를 여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고 고백한다.
"사실 '가구'라는 소재의 전시가 다른 전시보다 대중적인 호응과 인지도가 적은 편이에요. 디자인은 직접 사용해보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중요성과 차별성을 느낄 수 있는데, '가구'는 결혼할 때 장만하는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결혼을 했거나 준비하는 여성 그리고 전문가 외에는 관심 집단을 찾기가 어렵죠." 결국 전시 역시 대중의 관심과 트렌드에 영향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사이, 눈이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가구 전시회가 여럿 기다리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가구의 거장 핀 율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전시회부터 한 가지 테마를 가지고 국내 여러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까지, 성격은 달라도 개인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종호 Countess Credenza
핀 율부터 국내 신진 작가까지, 폭넓은 가구 전시회
기존에 대림미술관은 폴 스미스가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인 컬렉션을 소개하는 컬렉션전과 칼 라거펠트의 패션이 아닌 사진 전시 그리고 유르겐 텔러의 광고 사진이 아닌 순수 예술 사진을 조명한 전시 등 유명 크리에이터가 한 장르만이 아닌 여러 장르에서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크로스오버 장르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전시에서 핀 율을 택한 것도 이러한 전시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핀율은 과연 누구인가?
"난 튜더풍이나 엘리자베스풍의 응접실, 납 유리창과 값비싼 창틀, 거실에는 스웨덴 샹들리에가 있는 집에서 자랐어요. 서재에는 체스터필드 의자들도 있었죠." 어느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핀 율이 건축가로 시작했으나, 훗날 그의 디자인에 다양한 영감을 주었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주변 환경의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건축가로서 각종 인테리어 및 가구 전시장을 구성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그 안에 들어가는 가구와 소품을 직접 제작하면서 가구 디자이너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적인 덴마크 디자인의 경향이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아 자연을 모티브로 한 곡선을 사용한다든가 비비드한 컬러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핀 율은 전통적으로 장인으로 시작해서 디자이너가 되는 다른 디자이너와 달리 이전에 건축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가구에 건축적인 요소가 많이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디자이너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드라마틱한 곡선과 구조를 의자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Easy Chair No.45'나 'Chieftain' 'Sofa poet' 'baker sofa' 등에서 두드러진다. 사실 이러한 핀 율의 의자는 제작이 무척이나 힘들어서 대부분의 장인들이 제작을 거부했을 정도. 당시 실험정신이 강했던 닐스 보더라는 장인만이 그의 상상력을 현실화시켜주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30년간 덴마크 의자를 연구하고 수집해온, 개인으로서 다소 큰 규모의 스칸디나비아 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오다 노리츠구는 다음과 같이 핀 율 가구에 애정을 보인 바 있다. "나는 핀 율이 색깔을 요리하는 방식과 그의 디자인에서 보이는 유기적인 형태를 좋아한다. 'Easy Chair No.45'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건 모든 근대 의자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대림미술관의 '핀 율 탄생 100주년전-북유럽 가구 이야기'는 또 한 명의 멀티크리에이터를 소개하는 동시에 그의 디자인을 통해 대중에게 감동을 선사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가구 전시가 다른 전시에 비해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점을 고려해 다양한 연령층과 대상이 이 전시를 보고 싶어 하고 즐길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포인트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 부분은 직접 전시회에서 확인하면 좋을 듯하다. 그런 움직임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다양한 가구 디자인전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두드러지는 전시의 경향을 살펴보면 국내 신진 작가 여러 명이 프로젝트로 하나의 타이틀에 맞춰 참여하는 형태가 유독 눈에 띄는데 그로 인해 볼거리가 풍성한 것은 물론이고 개성 강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쉽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부띠크모나코미술관에서는 박종호, 박준범, 위형우, 한성재 작가가 '바오(BEYOND ART OBJECT)'전을 통해 각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능성을 넘어선 조각 오브제로서의 가구를 선보인다. 한 편 유중아트센터에서는 '내방'전이라는 이름으로 가구, 회화, 도자, 섬유 미술 등 다양한 전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내방'전이란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전통적인 주거 내에서 안주인이 거처하는 방으로 일컬어지는 내방(안방)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부부 공동의 생활과 휴식 그리고 손님 접대를 포괄하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공간으로 바뀐 쓰임새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종호는 두 전시에 모두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작가가 모여 하나의 전시를 함께하는 현상에 대해 부띠크모나코미술관의 김사랑 큐레이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전까지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페어의 형식을 통해서 대중에게 소개되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 왜냐하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는 순수 예술 작품을 전시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가구의 경우 기능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니 '판매'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최근 들어 가구를 작품으로 보고, 보다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곳이 많아요.
이번 '바오'전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가구를 결과물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작품을 구상할 당시의 드로잉이나 영감을 받았던 모티브 혹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영상을 준비하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 역시 전시로 풀어내려는 거죠." 이런 작업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 미팅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부띠크모나코미술관에는 박준범, 한성재, 위형우, 박종호 작가가 모여서 결성한 '바오' 전을 준비 중이다. 유중아트센터의 '내방'전에는 박종호의 가구 이외에도 헌 옷과 실을 이용해 내방을 표현한 추영애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어떻게 관람할 것인가
자, 이제 맛있게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고 좋아하는 순서대로 밥과 반찬을 골고루 집어 먹을 차례다. 일반 관람객들의 경우 어떻게 전시를 즐기면 좋을까? 우선 전시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핀 율 탄생 100주년전-북유럽 가구 이야기'와 같은 경우에는 작가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핀 율을 포함해 대부분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이너들은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추위와 긴 밤들이 계속되는 겨울이라는 자연환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전시회를 방문하기 전에 북유럽은 어떤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면 전시 작품들이 그 나라들의 특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스타일로 표현했는지를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내방'전을 포함한 여러 프로젝트성 국내 전시의 경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충실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인식과 경험을 담고는 있으나, 전시를 감상하는 내내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보는 동시에 상상력을 발휘해 작가의 관점을 유추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부띠크모나코미술관의 '바오'전은 유중아트센터의 '내방'전은 각각 관람이 가능하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핀 율 탄생 100주년 전-북유럽 가구 이야기'는 2 전시가 이어진다. 앞서 전시의 의미를 늘어놓긴 했으나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뒷짐 지고 갤러리 투어에 나서보자. 그래서 경험이 주는 의외의 수확을 직접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