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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관한 조금 다른 생각 공동주택 소행주살이 궁금하세요

엔터PR 2024-02-26
드라마에서조차 대가족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오로지 부모의 힘만으로 아이 낳아 키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아이 둘은 거뜬히 낳아 키운다는 마을이 서울에 있단다. 성미산 공동주택을 찾아갔더니 어른도 아이도 조금은 더 행복해 보였다. 겉보기엔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평범한 마을이지만, 공동 육아 등 실험을 거듭해온 느슨한 공동체를 품고 있었다.

마을이라 불리기에 어색함이 없는 곳

서울 도심에도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더러 있다. 서래마을처럼 외국인과 정계 인사 등이 거주하는 부촌으로 알려진 마을이 있는가 하면, 성미산마을처럼 먹을거리나 육아, 교육에 관한 남다른 관심이 특색으로 드러나는 마을이 있다. 높이가 66m에 불과하지만 보기 드문 도심 속 숲인 성미산이 마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 인근을 에둘러 성미산마을이라 부른다. 정확한 경계나 마을 표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십수 년이 훌쩍 넘도록 그리 불려왔고, 또 수많은 실험을 해오며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기도 한 곳이다.

더불어 살기의 시작은 1994년에 문을 연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었다. 아이를 함께 돌보기 위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부모들이 전세금을 마련하고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곳이었다. 당시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이제 성년이 됐고, 성미산마을은 수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오늘도 활기차게 새로운 '꿍꿍이'가 생겨나는 곳이 됐다. 마을이기 때문에 함께 먹고사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육아로 시작한 공동체는 교육 문제를 가로질러 함께 사는 일, 즉 집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마을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란 뜻)가 문을 열었다.

박종숙씨(40)는 소행주 기획 초기부터 함께했고 1호 주택에 거주하며 2, 3호 주택의 실무를 맡고 있기도 하다. 결혼 후 10년간 아파트 생활을 했지만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면서 이웃과 부대끼며 사는 삶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이렇게 나설 수 있게 됐다고.

"원래는 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했어요. 아이 둘 낳고는 복직을 했는데, 셋째까지 낳고 민폐다 싶어서 그만뒀어요(웃음). 일반 직장보다는 육아휴직이 편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셋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을 손에서 놓고 보니 아이 키우는 문제가 당면 과제가 됐는데 우연한 계기에 성미산마을을 알게 됐고, 같이 집 지어서 살면 좋겠다 싶어서 알고 지내던 엄마들을 열심히 꼬드겼죠. 그렇게 건너건너 알게 된 아홉 집이 모였고, 각자 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서 현실화하게 된 거예요."

빚은 이자를 낳고, 이자는 또 빚을 낳고, 늘 오를 것만 같았던 아파트 값은 점점 거품이 꺼져간다. 주거 문제를 한 가정의 힘으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누구나 갖고 있던 집에 대한 고민이 성미산마을을 만나면서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함께 비용을 모아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아이도 함께 돌본다면 이웃과 단절된 채 살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마음을 모아 기본적인 설계와 공부부터 해나갔다. 집을 지어서 입주하기까지 2년 정도가 걸렸지만 이런 논의 과정이 있었기에 막상 함께 살면서 생기기 시작한 어려움도 큰 고비 없이 넘길 수 있었다.

박종숙씨네 집 거실. 침실과 아이 방 크기를 줄이고 공용 공간을 넓게 설계했다.

"공동 육아로 아이들을 잘 키워냈잖아요. 육아 문제처럼 집 문제도 해결될 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동네 사랑방처럼 쓰이는 게시판에 함께할 사람을 모으는 공지를 내고, 뜻을 모아서 이듬해에 땅을 샀어요. 건설과 시공을 맡아줄 두 분이 공동대표가 되고 입주자들과 함께 논의하는 방식으로 준비했죠. 공동 육아 초기 멤버였던 두 집은 아이들이 다 컸고 나머지 집들은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부모들도 또래가 비슷해요."

입주를 시작해 같이 산 지 어느덧 1년 반이 됐다. 아홉 집이 부대끼며 한 공간에서 살다 보니 마을이 더 고향처럼 느껴지고, 아이들끼리도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단다. 1층은 자동차와 자전거 공용 주차장으로 쓰이고, 2층에는 공동 주방과 모임 공간, 그리고 방과후학교가 있다. 작은 사무실 두 곳은 마을기업에 임대해주었다. 3층부터 6층까지 주거공간이 있고, 옥상은 정원으로 조성해 아이들이 뛰놀거나 빨래 말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빨래가 섞이고, 창고의 짐도 섞이고, 집 사이 경계도 조금씩 없어져서 아이들은 이웃집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피곤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무던해지고 내 것 남의 것의 선을 긋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훨씬 편하다고 한다.

"만약에 이사 갈 일이 생기더라도 아홉 집이 한 덩어리로 가면 좋겠다고 해요. 물론 그런 일은 안 생겼으면 하지만요. 저도 오빠가 있지만 서로 결혼하고 나니 자주 못 보잖아요. 여기서 늘 같이 지내면서 힘든 얘기도 하고 남편 흉도 보고 하니까 이웃이 언니 동생처럼 가깝고 때론 친척보다 편해요. 아이들은 이웃집에 가면 자기 집에 없는 게 있으니까 신기한가 봐요. 눈만 뜨면 놀자고 들어와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 집 아이들도 딴 집 가서 편하게 노는 거잖아요.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제 할 일을 하면 되더라고요. 너랑 나를 나누면 피곤함이 끝도 없지만, 그걸 놔버리면 자연스럽고 편해져요.

집은 투자 수단 이전에 사는 공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소통에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 집 안팎의 일들도 함께 나눠 맡아야 한다. 입주자들끼리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저녁을 먹고 입주자 회의를 한다. 꼭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정해지는 일에는 토를 달 수 없다고 한다. 어지간한 일은 상식선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딱히 불만을 제기할 일도 없다고. 주택가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분리수거 당번을 정해 쓰레기도 돌아가며 처리한다. 공동 공간의 공과금도 분담해서 낸다. 그렇다고 늘 일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함께 휴가 계획도 세우고 수다를 떨고 정보도 나누며 사는 지혜를 배운다.

처음에 아내들의 경우 함께 사는 일을 딱히 반대할 일이 없었지만 남편들은 대개 시큰둥했다고 한다. 집안일에 큰 신경을 쓸 일도 없거니와 이웃과 정을 나누는 데 서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퇴근 후 어울려 술 한 잔 기울이는 일상이 남편들에게는 큰 낙이란다.

"저는 이웃과 함께 살면 여러모로 덜 힘들겠다 싶어서 주저 없이 정했어요. 반면 남편은 저러다 말겠지 했나 봐요. 막상 땅을 계약하고 여러 집이 모이니까 그때부터 걱정하더라고요. 대체로 남자들의 경우 집의 가격이나 현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먼저 생각하잖아요. 세상이 그러니까 투자해서 이익이 나지 않으면 손해라고 여기죠. 그런데 저희는 어차피 아파트를 사거나 집을 팔아서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미래보다 중요한 건 지금이라고 생각했죠. 아이들에게 또래 친구도 만들어주고 싶었고요. 집은 사고파는 수단이기 전에 사는 공간이잖아요."

박종숙씨네 집 거실. 침실과 아이 방 크기를 줄이고 공용 공간을 넓게 설계했다.

그러니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장래에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경제적 이득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웃과의 친밀함을 선택한 남다른 사람들이라고 봐도 좋겠다. 집을 지어서 입주하기 위해 대출이며 이자를 안고 들어왔지만, 그것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여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내 집 안에 필요한 공간이 다 있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집 자체는 좁아졌을지 몰라도 훨씬 넓은 삶을 살고 있다. 가장 활용도가 높은 공간은 2층의 공동 주방이다. 매일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모여 놀고, 해가 지면 모여서 저녁을 먹는다. 음향이나 영상 장비도 갖춰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파티를 하기에도 맞춤이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모임이 있을 때 빌려주기도 하니 이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다.

"지금 집이 25평 정도 돼요. 전에는 31평짜리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땐 좀 컸어요. 하루 종일 한 번도 들어가지 않는 방도 있었으니까요. 전에 살던 집과 비슷한 평수지만, 지금이 훨씬 넓게 느껴져요. 복도도 수납공간으로 함께 쓰고, 저희 주방에는 오븐이 없지만 공동 주방에는 있거든요(웃음). 집마다 구조나 크기가 다 달라요. 어떤 집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복층으로 올렸고, 아이가 하나인 집은 사이즈를 줄였어요. 10평부터 30평까지 필요에 따라 크기도 제각각이에요."

자연스레 공동 육아가 되는 덕분에 집 안팎으로 신경 쓸 일이 확실히 줄었다. 종일 아이와 씨름하던 아내들이 남편이 귀가할 때를 기다려 바가지를 긁는 풍경은 이 집에선 낯설 수밖에 없단다. 아이들을 붙들고 일일이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이 행복해지니 아이들도 덩달아 기를 펴고 산다. 그냥 보기에도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자란 여느 외둥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박종숙씨네 집 거실. 침실과 아이 방 크기를 줄이고 공용 공간을 넓게 설계했다.

"아이 키우는 건 즐겁고 재밌는 일이지만 고단하거든요. 어린이집 가기 전에는 세 명이 품앗이 육아를 했었는데, 하루만 아이를 보면 남은 이틀은 자유의 시간이 되는 거잖아요. 한 번 해보면 삶의 지혜가 생겨요. 우리 가족끼리만 살 때는 스트레스나 짜증이 다 남편한테 갔거든요.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쏟아냈었는데, 지금은 서로 둥글둥글해져서 쉽게 넘어가죠. 남편들도 주말에는 탁구도 치고 평일에도 같이 술 마시니까 좋아해요. 아마 남편들끼리도 서로 아내 흉도 보고 그러겠죠(웃음)."

낮에는 본인의 일을 할 수가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종숙씨는 소행주의 코디네이터도 맡게 됐다. 큰아이와 이웃의 두 아이가 근처 구립어린이집에 다니는데, 함께 오가니까 걱정도 덜었다. 윗집 사는 한진숙씨도 소행주에 함께 살면서부터 남편의 문자 메시지가 잦아졌다고 한다(그는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성미산 공동주택 입주기'를 연재했다).

"가끔 아이들 저녁 먹여서 들여보내고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요. 알게 모르게 벌어진 부부 사이가 조금씩 메워지는 것 같아요. 남편 퇴근도 빨라졌고요. 엄마 아빠 사이가 좋은 게 세 아이한테도 좋은 일이잖아요."

아이 셋을 둔 엄마가 여유 있게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랍다. 종숙씨는 초등학교 1학년, 다섯 살, 세 살 먹은 아이를 두었다. 아이들이 예전 생활을 유일하게 그리워하는 것이라면 마음껏 뛰어놀던 '아파트 놀이터' 정도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소행주살이가 아이에게 꼭 좋기만 한 일일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지나고 나면 큰 혜택이었다는 걸 알겠죠? 아이는 셋 정도 있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현실이 됐고, 이렇게 사는 덕분에 크게 힘들지도 않으니 좋아요. 아이들이야 맛있는 것도 이웃과 나눠 먹어야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니까 싫을 때도 있겠죠. 윗집은 아이가 한 명이라서 형제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입주했대요. 소행주의 자녀들은 총 열아홉 명인데, 대학생이 두 명, 고등학생이 한 명이고 나머지는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이에요. 나중에 나이 들면 다 같이 시골에 집 지어서 이주하자는 얘기도 많이 해요."

입주자 회의, 저녁 식사 등 공동으로 쓰는 공간. 방과 후 아이들이 노는 곳이기도 하다.

함께 귀촌하자는 계획도


그렇다고 소행주가 꼭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가정에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1인 가구'에 '독립생활자'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마을이다. 마포 지역의 특성상 시민운동이 활발하고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기에 비혼인들을 위한 복지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소행주 2호 주택에는 이런 젊은이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현재 다섯 명이 입주해서 살고 있다.

"자식을 키우면서 가족을 이룬 사람들뿐만 아니라 혼자인 사람들의 주거를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호에 빈 공간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독립 가구가 살아요. 주방과 거실은 같이 쓰고, 침실 네 개를 나눠 쓰는 거지요."

독립생활 근 10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짐 때문에 쓸데없이 무거워진 삶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공동주택을 다녀오면서 집의 쓰임새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맘 맞는 친구 몇과 이런 식으로 살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게 됐다. 옆 동네에 살고 있어서 오고 가며 마을 사람들을 접하게 된 탓도 있겠다. 함께 산다면 책도 나눠서 보고 옷도 서로 물려 입으면 된다. 냉장고 속 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음식물도 확실히 줄 것이다.

"이사 오면서 짐을 많이 줄였어요. 많이 갖고 있으면 새것이 들어올 틈이 없거든요. 쓰던 물건이 남의 집에 가 있기도 하고요. 장난감도 이 집 저 집 많이 섞였는데, 누군가 잘 쓰면 되는 거잖아요. 소유의 경계가 많이 없어졌어요. 마을에서도 바자회를 정기적으로 하고, 안 쓰는 물건은 되살림가게(옷과 잡화, 생필품 등을 파는 재활용품 매장)에 내놓죠."



2층에 입주한 마을기업, 성미산 공방 사무실. 가족의 행복이 커져가는 소행주의 내부. 녹지로 조성한 옥상. 여름이면 임시 풀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공동주택 생활의 백미는 저녁 식탁이다. 집집마다 반찬 몇 개씩 가져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 어느 집에서 별미를 한 턱 내기도 하며, 때로는 요리해줄 분을 모셔와 함께 배우기도 한단다. 비용은 공평하게 나눠서 내고 설거지도 돌아가면서 하니까, 식사 준비에서 해방된 아내들이 쾌재를 부를 만도 하다.

"예전에 비해 교육비 등 생활비가 줄거나 비슷한 수준인데 훨씬 여유로워졌어요. 3호 주택은 내년 여름 정도 열기 위해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먼저 결정하면 층수나 면적, 방의 구조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요. 이웃 3호 주택에 사실 분, 연락주세요."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취재 협조 / 소행주(02-337-0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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